28 마음을 잘 받아주어라
무대 위에 오른 코미디언이 관객을 향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능청스럽게 말한다.
"여러분! 너무 지나치게 저를 좋아하지는 말아주세요. 저도 압니다.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관객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뒤로 자지러진다. 왜 그런가? 누구나 잘 보이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건 좀 멋쩍고 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알고 싶어한다.
상대가 나를 주목하고 있으면, 내게 미소를 짓고 있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우리는 기분이 좋아진다. 반면에 상대가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나아가 자신을 몰라주는 상대를 비난하고픈 충동이 생겨나곤 한다.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두 마리의 강아지가 쿵킁 냄새를 맡으면서 상대를 파악해 가는 과정과도 같다. 우리 인간은 강아지처럼 흔들 꼬리도 없고, 곧추세울 털도 없다. 하지만 크게 또는 작게 뜰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다. 주먹을 날리기도 하고 손바닥을 하늘로 올리면서 '내가 졌다!' 라고 무의식적으로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신체적 반응을 나타낸다.
법정에 선 증인이나 배심원들에게 선서를 하게 만드는 변호사들은 이 같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배심원들의 본능적인 몸짓(신제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나아가 배심원들이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자신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는지, 몸을 뒤로 젖히고 있는지,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는지 자세하게 살핀다.
심지어 배심원들의 손짓까지도 꼼꼼하게 체크한다. 자신의 질문과 설명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손바닥을 부드럽게 펴고 있거나,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있는지 살핀다. 또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표시로 손을 쥐고 있는지, 주먹을 쥐고 있는지 살핀다. 그 밖에도 재판관이 피고에게 중형이나 사형 등을 언도했을 때 배심원의 얼굴 표정을 살핀다. 그들은 증인이나 배심원들의 모습만을 면밀하게 체크하는 조수를 고용해 법정에 함께 나오기도 한다.
이 같은 조수는 대부분 여자다. 감수성이 뛰어난 여자가 남자보다 섬세한 신체적 반응을 훨씬 날카롭게 관찰하기 때문이다. 변호사와 조수는 배심원들의 수많은 몸짓들을 꼼꼼한 체크리스트에 기록해 이를 수치화한다. 이렇게 작성된 점수를 기준으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배심원과 적대적인 배심원 등을 가려낸다.
1968년 민주당 전당대회장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다가 정부전복 음모 혐의로 체포된 7명에 대한 재판, 이른바 그 유명한 '시카고 세븐'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피고측 변호사였던 윌리엄 쿤슬러는 날카로운 관찰 끝에 줄리어스 호프먼 판사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군슬러의 주장에 따르면, 검찰측 최종 변론이 이루어지는 동안 호프먼 판사는 몸을 앞으로 기울임으로써 배심원들에게 관심과 흥미를 가지라는 메시지를 보낸 반면 피고측 최종 변론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몸을 뒤로 젖혀 배심원들에게 관심을 갖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나를 얼마나 좋아하나요?"
당신을 만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당신과 관계를 맺을 것인지의 여부를 무의식적으로 판단한다. 그들은 당신에게 항상 눈으로 묻는다.
“나를 얼마나 좋아하나요?"
이 무언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몸짓과 신호, 즉 보디랭귀지가 주는 답변에 기초해 당신과의 관계 형성을 고려한다. 따라서 당신은 새로 사귄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들의 “나를 얼마나 좋아하나요?" 라는 무언의 질문에 “와우, 나는 정말 당신을 좋아해요!” 라는 무언의 답을 해야 한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네 살짜리 꼬마가 낯선 사람과 마주쳤을 때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생각해 보라. 녀석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가 엄마의 치맛자락 뒤로 숨고 만다. 하지만 퇴근해 집에 들어온 아빠를 보면 힘차게 달려가 함박웃음을 짓고, 눈을 크게 뜨고, 팔을 활짝 펼처 아빠에게 안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아이의 보디랭귀지는 싱그러운 아침햇살 속에 웅크렸던 몸을 활짝 펼치는 어여쁜 꽃봉오리와도 같다.
중요한 비즈니스 파티에 나는 매력이 넘치는 친구 칼라를 거의 끌고 가다시피 하여 참석시킨 적 있었다. 그녀는 손꼽히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하지만 불황이 지속되면서 결국 회사는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그녀는 원치 않는 실직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최근 이혼까지 하는 바람에 그녀는 몸과 마음의 모든 신호와 반응을 굳게 닫아 건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그녀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파티에서 칼라와 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세련된 남자들이 우리 곁을 맴돌았다. 그들은 틈만 나면 칼라에게 하얀 치아를 살짝 드러내며 웃어주거나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녀는 주저하며 어깨 너머로 다급하게 희미한 미소만 가끔씩 지어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곧바로 나와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나는 짐짓 모른 척했지만 칼라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고 있었다.
‘왜 저 남자들은 웃기만 할 뿐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걸까?’
진짜 엄청 잘나가는 한 남자가 칼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곧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몰두했다. 나는 칼라에게 속삭였다.
"저 남자가 누구인지 아니? 세계적인 광고회사인 영&루비캄의 파리 지사장이란 말이야. 지금 저 회사는 파리에서 근무할 카피라이터를 찾고 있단다. 게다가 그는 멋진 싱글이야.”
하지만 칼라는 길게 한숨만 쉬었다.
그때 갑자기 칼라의 왼쪽 무릎 주변에서 “여보세요!” 하는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와 나는 동시에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파티를 연 주인의 사랑스러운 아들인 다섯 살짜리 윌리 녀석이 관심을 보여달라는 간절한 표정으로 칼라의 스커트를 붙잡고 있었다.
"오, 그래, 그래.”
칼라는 미소를 얼굴 가득 지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녀석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윌리의 팔꿈치를 쓰다듬으며, “오, 그래, 윌리, 엄마의 멋진 파티를 즐기고 있구나!" 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윌리의 얼굴이 맑게 빛났다. 녀석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총총걸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찾아 떠났다. 칼라와 나는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멋진 남자들이 칼라에게 시선을 던지며 슬며시 접근해 왔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살짝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는 사실에 매우 실망하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칼라, 너덧 명의 남자가 우리 주변에서 너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나 한 거야?"
"응, 알고 있어.”
그녀는 마치 우리 둘의 대화를 누군가 엿듣고 있지 않을까 살피듯이 초조하게 주위에 시선을 던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너는 살짝 미소만 지을 뿐이고.."
그녀는 내 말에 당황하면서 “그래… 맞아” 라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윌리 녀석이 네 스커트를 잡아당겼을 때 기억나지? 녀석에게 아름답고 풍성한 미소를 얼굴 가득 어떻게 지어주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 도중에 녀석을 얼마나 반갑게 반겨주었는가를 기억할 수 있어?"
"물론이다마다.”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칼라, 지금 네 옆에서 네게 미소를 짓는 남자에게 윌리 녀석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줘. 그리고 조금 전에 했던 것처럼 그에게 따뜻한 시선을 던져봐. 월리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의 대화에 그를 반갑게 끌어들이란 말이야.”
"이러지 마!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
“칼라, 넌 할 수 있어, 빨리 그렇게 하란 말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매력적인 남자가 우리 앞을 서성이며 칼라에게 미소를 지었다. 칼라는 드디어 내가 말한 그대로 행동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치아를 드러내고 그를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안녕하세요, 같이 대화를 나누시죠” 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곧바로 칼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잠시 후 나는 그 자리를 떴다. 두 사람 모두 내가 자리를 떴다는 사실을 몰랐다. 대화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칼라는 그 남자의 팔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이의 마음을 받아주는 기술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는 아이의 수줍음은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 형성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반면에 호감 있는 사람에게 천진하게 다가가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은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데 촉매제로 작용한다.
새로운 상대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새로운 상대와 진심어린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면 아이처럼 마음을 열고 몸을 활짝 열어젖혀라.
그러면 사교적인 자리 또는 잘나가는 비즈니스맨들의 모임에서 상대가 누구든 간에 당신이 원하는 것을 좀더 쉽게 얻는 데 도움이 된다.
만나는 사람이 누구이든 아이의 마음을 받아주는 기술을 이용하라, 상대방을 소개받기 무섭게 그 사람에게 잘 해주어라. 당신에게 다가와 커다란 미소를 환하게 짓는 사람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따뜻한 얼굴로 모든 관심을 기울여라. 새로운 사람에 대한 이 같은 행동은 “나는 당신을 매우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자신이 매우 특별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유아 침대에서 울부짖는 아기와 같은 마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명심하라.
[출처]레일 라운즈 지음/임정재 옮김 [사람을 얻는 기술] page 106-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