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02  귀신처럼 행동하라

행수어르信 2023. 6. 8. 17:54

02  귀신처럼 행동하라

매우 총명한 말(馬) 한 마리가 있었다. 녀석의 이름은 한스, 한스의 주인은 헤르 폰 오스텐 이라는 독일 사람이었다. 헤르 폰 오스텐은 한스가 정말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다름 아닌 산수(算數)를 할 줄 안다고 주장했다. 덧셈과 뺄셈, 나눗셈은 물론 구구단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구경꾼들 앞에서 한스의 주인이 외쳤다.
"자, 지금 너를 보러 온 사람들이 몇 명이지?"
그러자 한스는 오른쪽 앞발굽을 들어 구경꾼들 숫자만큼 땅을 탁탁 쳤다.
"그렇다면 너를 보러 온 사람들 가운데 안경을 쓴 사람은 몇 명 이지?"

이번에도 한스는 앞발굽을 들어 정확한 숫자만큼 땅을 쳤다. 눈이 휘둥그레진 몇몇 구경꾼들이 한스에게 산수 문제를 냈고, 녀석은 어김없이 정답을 맞혔다. 1990년대 초 한스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 되었다. 연일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유명인사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물론 한스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한스의 천재성을 정확하게 검토하기 위해 공식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녀석을 심판대에 올렸다. 한스를 시험하는 날, 강당은 과학자, 신문기자, 심령술사, 기병장교 등 녀석의 능력을 직접 보기 위해 몰려든 관중으로 빼곡 들어찼다. 몇몇 위원이 구두로 한스에게 산수 문제들을 냈고, 녀석은 계속해서 앞발굽을 이용해 정답을 맞혀냈다. 모여든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스의 초능력을 둘러싼 모든 의혹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위원들은 여전히 한스가 주인에게서 어떤 암시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위원회는 다시 한스를 시험무대에 올렸다. 위원들은 한스의 곁을 지키고 있던 폰 오스텐에게 강당 밖으로 나가라고 지시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지만, 이내 그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선 폰 오스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위원장은 한스의 능력이 그 주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 확신했다.

폰 오스텐이 나가고 위원장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한스에게 산수문제를 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놀랍게도 한스는 정답을 발굽으로 쳤다. 두번째, 세번째 문제도 한스는 정답을 풀어냈다.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휘파람이 쏟아지는 가운데 위원회는 정녕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때였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위원들 가운데 인생 경험이 풍부해 보이는 원로 과학자 한 명이 나섰다.

그는 한스에게 다가가 다시 산수 문제를 냈다. 다만, 다른 위원들처럼 큰 소리로 문제를 낸 것이 아니라 모여든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한스의 귀에 대고 문제를 속삭인 것이다. 그러자 한스는 발굽을 암전히 모은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과학자는 몇 차례 다시 산수 문제를 한스에게 속삭였지만 녀석은 묵묵부답이었다. 과학자가 빙그레 웃으며 사람들 앞에 섰다.

"한스는 분명 뛰어난 감각을 갖춘 말입니다. 하지만 녀석의 놀라운 능력은 산수 문제를 푸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섬세한 표정과 몸짓의 변화를 탁월하게 포착해 낸다는 데 있어요.”

실내를 꽉 채운 관중은 영문을 몰라 하며 어리둥절했다.
"출제자가 문제를 큰 소리로 외치는 순간, 한스를 제외한 우리는 모두 간단한 산수이기 때문에 암산할 것도 없이 그 정답을 알고 있었죠. 한스는 출제자가 문제를 큰소리로 외친 순간, 자동적으로 발굽을들어 땅을 치도록 훈련받았어요. 탁… 탁… 탁… 땅을 치면서 우리의 표정과 몸짓을 살핀 겁니다. 즉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스의 발굽으로 땅을 치는 횟수가 정답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감과 기대감을 표정, 미세한 떨림, 헛기침과 같은 몸짓으로 나타낸 겁니다. 한스는 바로 그 같은 징후가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는 순간, 발굽으로 땅을 치는 것을 멈춘 거죠. 그런데 저는 산수 문제를 한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죠. 따라서 여러분은 제가 한스에게 낸 문제의 정답을 미리 알 수 없었죠.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떤 몸짓과 표정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몰라 얌전하게 있었던 겁니다."

결국 한스의 초능력은 폰 오스텐의 치밀한 훈련의 결과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 친구는 어떻게 내 마음을 귀신 같이 읽었지?

당신은 종종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감탄하는 사람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글쎄, 그 친구는 내가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귀신 같이 알았는지 몰라. 정말 놀라운 친구야!""
“우리 팀장은 말수도 적고 늘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만 파고 있는데도, 팀원들이 뭘 하는지, 뭘 원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더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그녀는 내성적이고 어수룩해 보이지만, 막상 얘기를 나눠 보면 정말 빈틈이 없다네.”
“우리 회사 인사담당자는 신입사원 채용 면접 때 별로 질문을 하지않는데도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매우 뛰어나더군.”

이처럼 절로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들은 무엇이 다른가? 그들은 모두 아주 미세하게 변화하는 상대의 표정과 몸짓 등을 탁월하게 읽어내는 감각을 갖췄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상대와 대면했을 때 그의 말소리에는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는다. 다만 대화를 진행하면서 상대가 어떤 신체적 반응을 보이는지 면밀하게 체크한다. 이를 통해 상대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을 정확하게 구별해 낸다. 본능적인 떨림과 움직임 등을 정확하게 파악해 이를 오랫동안 기억해 둔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가 내게 원하는 반응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이로써 감탄과 탄성을 이끌어낸다. 바로 그 순간, 상대는 내 사람의 목록에 새롭게 진입한다.

상대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면 귀신처럼 행동해야 한다. 귀신처럼 행동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좋은 훈련방법을 소개해 보자.
당신은 TV 드라마를 좋아하는가? 드라마를 시청할 때 볼륨을 완전소거하라. 등장인물들의 어떤 대사도 들리지 않게끔 환경을 설정한 후 그들의 크고 작은 다양한 행동들을 면밀하게 관찰해 보라. 그러면서 드라마의 줄거리를 예측해 보고 파악해 보라. 그러고 나서 휴일에 그 드라마의 재방송을 시청하라. 이번에는 볼륨을 켜놓은 채 말이다. 당신의 예측과 짐작이 80% 이상 맞았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해 보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파티션 너머로 들려오는 동료들의 말소리, 전화 받는 소리, 기침 소리,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 사각사각 볼펜을 굴리는 소리 등등을 통해 지금 당신의 동료들이 어떤 몸짓과 신체적 반응, 태도 등을 보여주고 있을지 상상해 보라. 가끔씩 곁눈질이나 스쳐지나가면서 당신의 예측이 얼마나 들어 맞았는지 측정해 보라.

어느 날 당신은 어떤 상대가 당신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신호를 보내옴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면 그가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먼저 다가가라. 어떤 상대가 말 못할 고민을 하고 있음이 감지되면 먼저 다가가 도와주거나, 상대가 전혀 모르게 그 고민을 해결해 주어라.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대의 말을 통해서 상대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침묵' 을 통해 상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스는 결국 인간의 언어와 수리사고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스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말이 된 것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결코 귀신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귀신처럼 행동할 수는 있다.

당신이 귀신처럼 행동할 때 상대는 당신에게 기꺼이 사로잡힌다.


[출처] 레일 라운즈 지음/임정재 옮김
[사람을 얻는 기술] page 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