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섣불리 나서지 마라
20 섣불리 나서지 마라
몇 년 전이었다. 나는 새롭게 알게 된 사람에게 어떤 모임에서 스키를 무척 좋아한다고 털어놓은 적 있다. 한번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내가 즐겨 찾는 스키장이며 좋은 장비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상점들이며 정신없이 얘기를 지속해 나갔다. 상대는 그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가끔씩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그에게 스키를 탈 줄 아냐고 물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스키를 매우 좋아해요. 아스펜 스키장에 콘도를 갖고 있어요."
아스펜 스키장에 콘도를 갖고 있을 정도라면, 그는 나보다 훨씬 스키에 대해 조예가 깊은 사람임에 분명했다. 나는 정말 머쓱했다.
"아, 이런… 제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았네요, 에고...”
"하하, 별 말씀을요. 아까 말씀하셨던 용품점의 전화번호를 제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좋은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겸손한 그를 아직도 내 소중한 사람으로 받들고 있다. 그때 얻은 교훈이 바로 상대가 꺼낸 화제가 자신도 잘 아는 이야기라고 해서 섣부르게 상대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지 말고, 상대가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독백하듯 얘기할 때까지 참을성 있게 들어주라는 것이다.
상대가 자신의 얘기를 즐기도록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거나 박수를 치는 등 적절한 추임새만을 넣어주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당신도 상대의 주제에 관심이 있다고 지나가듯 겸손하게 말하라. 그러면 상대는 자신을 배려해 준 당신에게 깊은 호감과 인상을 받게 된다.
최근 비즈니스 모임에서 만난 한 사람이 내게 자신이 워싱턴D.C.를 다녀왔다고 말한 적 있다. 물론 그녀는 내가 워싱턴D.C. 출신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리 없었다. 그녀는 국회의사당, 워싱턴 기념탑, 케네디 센터에 대해서, 그리고 남편과 함께 록 크릭 공원에서 자전거를 탄 추억을 내게 들뜬 목소리로 전해 주었다. 나는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그럭저럭 대단원의 막을 내렸을 때 나는 그녀에게 어디에 숙소를 정했었는지,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했었는지, 아름다운 메릴랜드나 버지니아 교외 지역을 가보았는지 물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매우 좋은 듯했다. 그러고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선생님도 워싱턴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아요?"
"예, 잘 알아요. 제 고향이 워싱턴이거든요."
"고향이시라고요?"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근데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제 얘기가 상당히 짜증나셨죠?"
“천만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제가 사실대로 말하면 이야기를 중
간에 멈추실까봐 조마조마했거든요."
그때서야 비로소 그녀는 “아이쿠!" 하며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애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현재 그녀는 내 중요한 사업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상대가 당신이 했던 활동, 당신이 했던 여행, 당신이 속해 있는 클럽, 당신이 갖고 있는 관심사 등을 화제로 꺼냈을 경우, 혀를 꽉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상대가 자신의 독백을 즐기게 하라. 그리고 당신도 상대와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하라. 그러는 동시에 상대가 민망해하지 않게끔 상대가 이야기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상 피드백을 주어라. “아까 말씀하셨던 용품점의 전화번호를 좀 알려주실 수 없을까요? 좋은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배려의 피드백을 던짐으로써 얼치기 스키어의 민망함을 없애준 아스펜의 프로페셔널 스키어처럼 말이다.
[출처]레일 라운즈 지음/임정재 옮김 [사람을 얻는 기술] page 79-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