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미소는 천천히 지어라
23 미소는 천천히 지어라
꼭 1년 전이다. 나의 대학 동창인 미시는 포장용 상자를 만드는 미드웨스턴이라는 회사를 가업으로 이어받았다. 어느 날 그녀는 새로운 거래가 기대되는 몇몇 고객과의 저녁식사에 나를 초대했다. 나는 보는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게 만드는 그녀 특유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오랜만에 다시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서 가업을 물려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내심 걱정도 많이 했다. 거친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들었다가 깊은 상처라도 받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포장용 상자의 비즈니스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나로서는 딱히 뭐라 조언을 줄 만한 입장도 아니었다.
미시와 나, 그리고 고객들은 뉴욕 시내 식당가에 자리한 칵테일 라운지에서 만났다. 예약한 자리로 안내를 받아 가면서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 밤만은 멜리사라고 불러줘."
"물론이지. 비즈니스 미팅에서 애칭을 부를 순 없잖아.”
지배인이 우리를 자리에 앉혔을 때 나는 곧 건드리면 까르르, 까르르 맑은 웃음보를 터뜨리던 천진한 미시가 전혀 딴판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정말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보는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게 만드는 특유의 친화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소에 곁들여진 그녀의 말들 하나하나가 통찰력 있고 신실하다는 사실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녀의 따듯한 미소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팅은 물론 성공적이었다.
식당에서 나와 그녀와 함께 택시에 올라탔다. 나는 즐거운 마음을 감출 길 없었다.
"정말 많이 변했구나. 경영자의 풍모가 물씬 풍기는 걸?"
"그렇게 보여? 호호, 난 딱 한 가지만 변했을 뿐이야."
그녀가 까르르 웃었다.
"그래? 그게 뭔데?"
"흠… 그건 바로 미소' 야.”
선뜻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재차 물었다.
"그게 뭐라고?"
"미소”
그녀는 내게 빙긋 웃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누워 계실 때 나는 곧 내가 가업을 이어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지. 어느 날 당신께서 내 인생을 바꿀 만한 대화를 시작하셨지. '얘야,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니? 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으셨지. 그대를 사랑해요. 그런데 어쩌죠? 세월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그날 아버지의 노래는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아버지는 다시 노래를 부르셨어. 나는 너를 무척 사랑한단다. 그런데 어쩌지? 네 미소가 너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그러시고는 침대 맡 서랍에서 신문 스크랩을 꺼내셨지. 거기에는 비즈니스 여성 리더에 관한 연구들이 실려 있었어. 기업을 경영하는 여성은, 천천히 미소를 지으면 상대에게 좀더 깊은 신뢰를 줄 수 있다는 발표들이었지.”
나는 미시의 말에 강한 전율을 느꼈다. 나는 인류 역사를 이끈 마거릿 대처, 인디라 간디, 골다 메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등과 같은 여성 리더들에게서 내가 받았던 첫인상을 차례대로 머릿속에 떠올렸.다. 과연 그들은 빠르게 사라지는, 가벼운 미소를 짓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얼굴 가득히 짓는 따뜻한 미소야말로 바로 큰 자산이라는 말씀을 하셨어. 하지만 '천천히 미소를 지을 때만 유의미한 자산인 거지. 그래야만 상대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으니까."
그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미시는 사람들에게 항상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보인다고 말했다. 그녀는 먼저 입술을 천천히 앞으로 내미는 훈련을 했다. 이를 통해 상대는 그녀의 미소를 좀더 신실하게 받아들인다. 그녀가 오직 상대를 위해서만 미소를 짓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천천히 미소를 짓는 까닭에 미시는 알차고, 웅승깊으며, 믿음이 두터운 사람으로 보였다. 짧은 시간 안에 천천히 미소를 지음으로써 그녀의 얼굴에는 아름다움이 가득 번져나간다. 그리고 그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특별하고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나는 미소에 대해 좀더 많은 것들을 알아보리라 결심했다. 새 신발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신발을 신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핀다. 헤어스타일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몇 개월간 길거리 사람들의 미소를 살피기도 하고, TV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미소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미소, 성직자들의 미소, 기업 CEO들의 미소, 세계적인 지도자들의 미소도 알들하게 살폈다. 그 결과, 하얀 치아가 보일 듯 말 듯 한 수많은 미소 가운데 상대에게 가장 신뢰를 줄 수 있는 미소는 '천천히' 짓는 미소임을 발견했다.
천천히 미소를 짓는 사람은 얼굴의 모든 주름을 흡수한 듯 보인다. 그런 다음 천천히, 몰려오는 홍수처럼 얼굴 가득 미소가 번져나간다. 따라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신뢰를 줄 수 있는 미소를 '홍수 같은 미소' 라고 정의 내렸다.
당신이 진정으로 인사를 건네야 하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 곧바로 미소 짓지 마라. 상대의 얼굴을 잠시 자세하게 쳐다보라. 잠깐 숨을 멈춰라. 상대에게 흠뻑 빠져라, 그 다음 따뜻하면서도 그만이 알아보는 미소를 홍수가 몰려오듯이) 얼굴 가득 짓고, 눈까지 미소를 지어라.
그러면 상대는 당신의 미소에 흠뻑 젖는다.
빠른 미소는 입가에서 곧바로 사라지지만, 천천히 짓는 미소는 상대의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번져나간다.
[출처]레일 라운즈 지음/임정재 옮김 [사람을 얻는 기술] page 88-92
